제 63호팀 윤슬
오늘 별일 없었는데, 왜 다 그만두고 싶었을까?
누리님은 그런 날 없나요? 오늘 딱히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, 평소처럼 지내다가 문득 ‘아, 다 싫다’, ‘그냥 사라지고 싶다’는 생각이 스치는 날. 분명 오늘도 평소와 비슷했는데, 그럴 때면 오히려 “별일도 없었는데 나는 왜 이러지?”라는 생각이 더 오래 남기도 해요.
한번 하루를 다시 생각해봤어요.
아침부터 피곤하긴 했고, 별것 아닌 말에 기분이 조금 상하기도 했고, 해야 할 일은 계속 밀려 있었고. 집에 가서 쉬고 싶은데 내일 생각을 하면 벌써 피곤하기도 했어요. 근데 이런 걸 하나하나 ‘힘든 일’이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잖아요.
친구랑 크게 싸운 것도 아니고, 시험을 완전히 망친 것도 아니고. 그래서 그냥 ‘뭐, 이 정도야.’ 하고 넘겨버렸던 것 같아요. 누리님도 오늘 그렇게 넘긴 일이 하나쯤 있지는 않았나요?
저도 별거 아닌 일은 그냥 넘기면 끝나는 줄 알았어요. 조금 기분 나빠도 금방 잊고, 조금 피곤해도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지고.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더라고요. 별거 아닌 일이 하나 있었을 때는 괜찮은데 그런 게 계속 이어지는 날에는딱 하나를 골라서 ‘이것 때문에 힘들어’라고 말하기도 어려웠어요.
그냥 이유 없이 기분이 가라앉고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았던 것도 귀찮아지고.
아무 일도 없었던 게 아니라 별거 아닌 일이 너무 많았던 날도 있었어요.
정작 뭐가 힘드냐고 물어보면 잘 모르겠는데, 머릿속에서는 ‘다 그만두고 싶다.’ ‘그냥 없어지고 싶다.’ 때로는 ‘죽고 싶다’는 생각까지 들 때가 있어요. 물론 같은 말을 떠올렸다고 해서 모두 같은 마음인 건 아니에요. 정말 죽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고, 지금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고, 너무 지쳐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걸 수도 있으니까요.
그래서 저는 그 생각을 억지로 다른 말로 바꿔버리기보다는
‘근데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?’
한 번 더 생각해보려고 해요.
사실 힘든 것보다 이런 생각이 든 나 자신이 더 싫어질 때도 있잖아요.
‘나는 왜 이러지?’, ‘별일도 없었는데.’, ‘다른 사람들은 잘만 하는데.’
저도 모르게 그렇게 생각할 때가 있어요. 근데 이미 하루 종일 이것저것 견디고 왔는데 집에 와서 나한테까지 한 소리 들으면 좀 억울하잖아요.
그러니까 오늘만큼은 ‘나 왜 이래?’보다 ‘오늘 뭐가 그렇게 힘들었지?’ 정도만 물어봐도 좋을 것 같아요.
아침부터 피곤하지는 않았는지, 누가 한 말 하나를 계속 마음에 담아두지는 않았는지,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고 있지는 않았는지, 괜찮은 척 넘긴 일은 없었는지. 하나씩 생각해봐도 여전히 이유를 모르겠을 수도 있어요. 그럼 그것대로 두어도 괜찮아요. 다만 오늘 ‘다 그만두고 싶다’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면, 그 생각만 보고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.
오늘 별일이 없었던 게 아니라 내가 별일 아니라고 넘긴 게 있었을 수도 있으니까요.
누리님의 오늘에도 말하지 않고 지나온 일이 있었다면, 오늘만큼은 그 마음을 조금 알아주는 밤이 되었으면 좋겠어요.

댓글 1
이런 고퀄의 콘텐츠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